| 팔마비(八馬碑)[팔마부:베테랑부] |
| 고려 충렬왕(1277년)때 순천부사로 재임하던 최석(崔碩)의 청렴비로 한국 역사상 |
| 지방관의 선정 겸 청덕비의 효시라는 데서 큰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유래는 |
| 임기를 마치고 귀경하는 승평부사 최석의 선정에 고을 주민들이 관례에 따라 말 8마리를 |
| 한양으로 올려보냈는데 최석이 도중에 낳은 새끼말을 포함 9마리를 되돌려 보내오자 |
| 마을 주민들이 최석부사의 청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|
|
| 승평(昇平)[승평부:청년부] |
| 순천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으며 감평군이라 칭했다 |
| 통일신라시대 경덕와16년(757년)에 승평군이라 칭했으며 |
| 고려시대때는 승주로 개칭을 하였다가 성종2년(983년)에 승평군이라고 했다 |
| 그후 조선시대 고종32년(1895년)에 순천군으로 되었으며 |
| 1995년 1월1일 순천시와 승주군을 통합하여 새로운 순천시로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|
|
| 봉화산(烽化山)[봉화부:장년부] |
| 순천시의 한 복판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는 해발355m의 봉화산이 있다 |
| 현재로서는 옛날 봉수대의 흔적을 찾아볼수 없다고 하고 현편 이 봉수대지 북쪽 봉우리를 |
| 중심으로 옛날 이 곳에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|
| 현재 이 봉수대와 북쪽 산봉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외각석축의 일부가 동쪽 산 아래에서 |
| 볼 수 있으며 당시 봉수군들이 거주 하였던 건물지인지 6.25 사변 전후에서 군대가 |
| 주둔했던 건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건물지와 우물이 발견 되었다 |
| 이수광이 편찬한 승평지에 보면, 이봉수대는 "동쪽 광양 건대산으로부터 응하여 |
| 순천읍성지의 서쪽 관문에 보고한다"고 되어 있다 |
| 지금은 순천시민이 주말이나 휴일에는 말할 것도 없이 평일에도 먼동이 트기 전부터 |
| 어둠이 깔릴때까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|
|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지키려고, 건강을 잃은 사람들은 건강을 되찾으려고 |
| 쉼 없이 봉화산을 찾는다 |
| 하루에 한 번씩 일 년 동안 봉화산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오르내리면 성인병이 |
| 모두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다 |
|
| 삼산(三山)[삼산부:지역동배부] |
| 삼산이 어디냐고 물으면 용당동에 있는 세 봉우리의 산을 삼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|
| 그러나 순천에는 삼산삼호신인(三山三護神人)이 있다고 구전한다 |
| 세 산에 순천을 보호하는 세 신이 있다는 말이다 |
| "신증동국여지승람"의 인물편에는 |
| 후백제 김총은 견훤 아래에서 벼슬을 하여 인가별감에 이르렀고,죽어서 순천부의 성황신이 |
| 되었고,고려 박영규는 후백제 왕 견훤의 사위이다….고려왕이 좌승의 벼슬을 하사하고 |
| 두 아들에게도 벼슬을 주었고,죽어 해룡산신이 되었다 |
| 박난봉은 괴걸한 영웅의 자태가 있어 인제산과 부근의 진산에 성을 쌓고 웅거하다가 |
| 죽어서 인제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|
| 그러므로 삼신을 모신 성화사는 진례산(여천시 상암동),해룡산사는 해룡산(홍내동) |
| 박난봉의 사당은 인제산(인제동)에 있었다고 해서 삼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|
| 하지만 봉화산의 옛 이름이 성황당산이고 생목동에 성화사가 있었으므로 성황신인 |
| 김총은 어느 땐가는 생목동에 성황사를 짓고 제를 올렸을 것이므로 |
| 인제산,해룡산,성황당산을 삼산이라고도 한단다 |
|
| 이수(二水)[이수부:개나리부] |
|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희천과 의주에 귀양갔다가 1500년에 순천으로 적소(謫所)을 |
| 옮긴 김굉필과 조위가 노닐었던 임청대(臨淸臺)의 기문(記文)에 동계(東溪)와 서계(西溪)가 |
| 있다 동계는 동천을 서계는 옥천을 이른 말이다 |
| 1565년에 옥천정사(玉川精舍)를 지은 뒤로 옥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|
| 백제 곧 사평군때는 이사천 근처 사평(무평)이 읍거었고 승주 연해군때는 서면 강청(江淸)이 |
| 읍거였다 승평때에 옥천.영옥.남내동 일대가 읍거였을 가능성을 두고 생각하면, 이수는 |
| 동천과 이산천을 두고 이른 말일 수도 있다 |